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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남산의 부장들'
    book 2020. 5. 10. 22:22
    남산의 부장들
    국내도서
    저자 : 김충식
    출판 : 폴리티쿠스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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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감상: 

    이간질의 리더십과 이리떼

     

    책 속의 밑 줄

     

    • 김형욱이 미국에서 회고록을 구술하면서 “김재춘이 박병권(朴炳權) 장군의 운전사 출신”이라고 깎아내린 것도 박 의장의 ‘이간질’ 탓인 것 같다고 김재춘은 짐작하고 있다.

    • 박 대통령은 “종필이는 옹졸해. 남을 포용할 줄 모르고 심지어 윤 장군 자네도 자르라고 해···”, “이후락이는 종필이 칭찬도 하는데 종필이는 이후락이 욕만 해”라며 JP를 미워하는 기색이었다고 한다.

    •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소신대로 하라는 박 대통령의 무한책임론은 바로 무책임과 통한다’고 비판했다.

    • 김재순은 고인(박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까 두렵다면서도 “박 대통령은 김형욱을 참으로 잘 부렸다. 김형욱이 그렇게 한 사람(朴)을 제외하곤 안하무인으로 굴었던 배경은 박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이다”고 증언했다. 당시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을 잘 아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박정희 용인술의 요체를 ‘분할통치’, 즉 실력자 간 이간질, 충동질을 통한 충성심 우려내기에 있었다고 요약한다.

    • 박 대통령은 40대 기수들의 움직임과 선풍이 일과성이 아니라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그의 권위주의적인 사고와 10년 가까운 집권에서 얻은 나름의 성취감, 자신감 등이 ‘어린애들과의 싸움’(박 대통령의 표현이었다)을 피하고자 했다. 그것도 불법적인 정치공작으로···.

    • “박 대통령을 교주로 하는 박정희교를 신앙하는 기분으로 일해야 한다.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는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각하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한걸음 더 나아가고···.”

    • 영호남 지역감정 부추기기, 김대중 조직참모 엄창록 격리, 향토예비군 폐지를 둘러싼 안보논쟁 유도, 박 후보 유세장의 청중동원, HR 주재의 고위 선거대책회의 운영을 통한 행정조직 동원, 박 후보 ‘마지막 출마’ 선언 그리고 신민당 지도부 이간공작 등. 핵심전략은 모두 이후락의 중정 작품이었고 대부분 적중했다.

    • HR은 맛있는 생선초밥을 청와대에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즈미’에서 정성스럽게 포장된 초밥은 대사관 사무관에 의해 간이 냉동상태로 비행기편으로 서울에 보내졌다. 이렇게 해서 청와대까지 공수된 초밥은 박 대통령의 입맛을 돋우었다. 참으로 갸륵하다 싶을 정도의 ‘HR정성’이 대통령의 가슴을 사로잡았음은 물론이다. 그 당시 초밥 심부름을 하던 사무관 이씨는 훗날 주 이탈리아 대사도 지낸 고위 외교관. “그 무렵 몇 차례 초밥을 나르면서 곰곰 생각하니 이게 도대체 외교관이 할 짓인지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이후락 대사가 얄밉기까지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정도의 마음을 쓰기란 아부심만 갖곤 안 되고 하늘도 탄복할 정성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귀밝은 HR이 강창성, 전재구 등의 ‘괘씸한’ 짓을 모를 리 없다고 강은 지레 짐작했다. HR은 강 차장보의 사표를 반기듯 챙겨 넣었다. 그러나 다음 날 청와대를 다녀오더니 HR은 강을 불러 사표를 되돌려주었다. 그는 “각하께서 강 장군을 계속 쓰래. 잘 도와줘”라고 부탁했다.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이었다. 강씨의 회고. “과연 HR은 박 대통령의 뜻에 충실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눈치도 빠르면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람도 대범하게 수용해서 부리는 스케일을 갖춘 큰 그릇이었다.

    • 변호인 강신옥도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서서 말했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 악법과 정당하지 않은 법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도 투쟁할 수도 있다. 대학생들인 피고인에게 그 악법을 적용해 다루는 것은 뒷날 역사적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 박종규, 차지철, 이후락, 김형욱, 윤필용 등이 정치적인 프리토리언(Praetorian:친위그룹)이었다면 정주영은 ‘업계의 프리토리언’이었다.

    • 92년 ‘정주영 정당’이 국회 원내 교섭단체로 떠오르고 정씨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내달은 것을 지켜보면서 후세 사가(史家)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한국은 귀중한 80년대를 박정희가 낳은 ‘안하무인의 군벌’ 때문에 허송하고, 90년대를 박정희가 키운 ‘기고만장의 재벌’ 때문에 탕진해 버렸다.”고 기록하지나 않을까. 그래서 박정희의 공(功) 과(過)는 상계되어 ‘제로섬’으로 나아갔다고 하지나 않을까.

    • 70년대 신직수, 김치열 양인의 ‘뻑뻑한 관계’(이모 전 법무부장관의 표현)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물론 박 대통령은 그 둘의 까칠한 관계를 꿰뚫어보고 중용했다고도 한다.

    • 이규동(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육사2기), 이규승(육사 7기). 이규광(육사 3기) 3형제 가운데 막내인 이규광은 헌병병과에만 있어서 시종 정보를 다룬 경험이 풍부했다. 이씨 형제들은 50년대부터 육사 11기생도 전두환의 군부내 보호자가 되고 후견인이 되어 전을 끝내 대통령으로까지 밀어올렸다. 79년, 그러니까 10·26 직전 전 보안사령관과 그의 처삼촌은 박 대통령의 비호하에 실력자들의 역학관계와 ‘검은 데’를 캐고 있었다. 그것이 박정희 사후 전두환 장군의 권력장악에 상당한 힘이 되지 않았을까.

    • 63년의 남산 인사과장 전 소령이 17년만에 실권을 장악한 장군이 되어 부장자리를 차고앉은 것이었다. 그것이 넉 달 뒤 대통령으로의 ‘승진’을 위한 몸풀기 체조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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